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부산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이종혁

#부산시장_기호6번_이종혁
부산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이종혁 그는 누구인가?
   
이종혁을 한 문장으로 표현 한다면 그의 ‘좌우명’인 “貧賤之交不可忘 (빈천지교불가망)”이다. 이는 “가난하고 어려울 때 어우러진 인간관계는 언제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뜻으로 그 문장을 인생의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타고난 리더십으로 맺은 인간관계에 겸손한 자세로 도움 받음을 감사히 여기며,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56년 여름, 가난했던 집안에서 1.5kg의 허약아로 태어나 좌성 초등학교-중앙 중학교-동성 고등학교를 거쳐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진학하여 법학도로써 대한민국의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되겠다는 목표와 허약하게 태어났던 자신의 유아시절의 고통을 알기에 약자가 희생  당하지 않는 사회 만들기를 미래의 목표로 세웠다. 허나 1985년 대학 4년 전두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2.12 총선투쟁으로 수사기관에 쫒기는 신세가 되면서 인생궤도에 변화가 생겼다.
 
 
전두환 정권에 항거한 부산소재 대학생 최초의 민주화 투쟁 사건이었던 12대 총선 민주화 선거혁명 추진 대학연합 고문시절, "돈에 매수되어 투표행사를 잘못하여 자유와 인권을 훼손시키는 역사의 죄를 짓지 말라"는 유권자 호소 전단을 제작 살포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사기관의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 청년 이종혁은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화 시대의 정치투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당시 야당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동아대학교 법학과 선배 ‘서석재’ 의원의 제안을 받아85년 30세의 나이에 의정 보좌관으로 여의도 국회에 발을 딛게 된다. 12-13대 서석재 의원의 4급 정책보좌관으로 지내면서 직선제개헌국민운동, 6.10민주화 항쟁 등의 격동의 한국 현대 정치사를 현장에서 몸소 투쟁하고 체험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경험을 배워갔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난 후 30대 후반의 나이로 새로운 세계를 보고 배우기 위해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구소련)와 개혁 개방이 시작된 중국에 객원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단 생각에 러시아와 중국의 정치지도자 그리고 미래의 젊은 정치 동량과의 인맥을 쌓기 시작하여 당시 옐친 대통령의 측근으로 나중에 클렘린 궁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발렌틴 유마세프’와는 절친한 교분을 가졌고, 러시아 군 최고사령관 육군원수 ‘샤포스니코프’ 장군과 블라디보스톡 태평양 함대 사령관과는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다. 또한 94년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객원 연구원 시절 인생의 스승인 모스크바대학의 학장 ‘꾸꾸슈킨’ 박사와 러시아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사하로프’ 박사의 부인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인권지도자 ‘엘레나보네르’ 여사를 통해 세상의 바르게 바라보는 시야와 안목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막 개혁 개방이 진행되고 한중수교가 맺어진 중국에서의 북경대학 객원연구원 시설, 도약하는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과 경제성장 가능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중국에서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양부가 되어주신 ‘장지상’ 어른은 모택동의 측근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한 주역중의 한분으로, 검소한 생활의 증거인 초라한 소파에 앉아서 중국의 건국 역사와 정치지도자의 품성과 철학을 얘기하실 때 느꼈던 그 얼굴의 당당한 기품과 광채와 같이 빛나는 고고함을 통해 잘사는 삶과 존경받아야 할 국가지도자 상이 무엇인가 가슴 깊이 배웠다. 그가 직접 쓴 글귀를 전해주며 평생 동안 정치인의 활동지침으로 삼으라했던 “무욕즉강”이란 말이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는 이종혁은 지금도 "욕심이 없으니 즉 강해질 수 있다." 는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기고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많은 인간관계를 맺었다. 북경대학의 스승, ‘갈진가’ 교수와 ‘오수청’ 북경대 총장,
세계적 부호 궈메이 그룹의 황광위 전 회장, 세계적 중국포털 신랑의 대표, 차이나유니콤 사장, 중국과학원의 시노소프트 대표 ‘허천’박사 등의 중국 내에서 손꼽이는 경제인들과의 친분이 지금까지 이종혁을 신념이 바른 정치인으로 살 수 있게 이끌어준 동력자라 할 수 있다.
 
   
이종혁은 고국으로 돌아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8대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구을/한나라당)을 지내면서 그동안 경험하고 배워왔던 신념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18대 국회의원 이종혁은 의정 활동계획과 목표가 분명했다. "대한민국 미래 성장 동력산업의 발굴과 육성 발전" 즉,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동력산업을 찾아 성장시켜 20~30년 뒤의 대한민국을 지탱 할 안정적인 미래 산업의 정착을 통해 ‘부강한 대한민국’, ‘행복한 국민 성공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2008년부터 주장했던 미래 성장 동력산업은 아래와 같다.
1. 장수의학(노화방지의학) 산업과 신약, 인공장기 개발 위주의 바이오산업
2. 석유자원 고갈 시대를 대체할 신에너지 산업
3. 나노기술과 융합된 신소재 산업
4. 유비 쿼터스 및 RFID, IRID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정보통신 산업
   
18대 국회의원 이종혁은 다년간의 러시아, 중국의 정치 및 경제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당시의 한국주력산업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고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의 대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 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변화하는 경제와 혁신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산업을 찾아내고 키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18대의 초선 국회의원이 12~3명으로만 구성되는 국회 예산 결산 특별위원회에 계수조정위원을 두 번 연속하면서 부산의 예산을 원래 예산안보다 증액시켜 확보하여 남해안 고속도로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입구, 병목 냉정 구간이라 부르는 차가 엄청 밀리는 구간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 2500억과 북항 예산, 해운대 백사장 개선 사업 예산 등을 확보하셨다. 그리고 부산진구의 노인 문화예술 회관, 영재 문화원, 여성 문화원, 6.25 참전 용사를 위한 가야 보훈회 등 지역 발전에 힘썼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할 수 있는 역량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그의 의정 활동 기간 4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제 18대 국회 대한민국 헌정대상, 전국소상공인연합 최우수 국회의원상 등 20여회의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열심히 본분을 다하는 움직이는 국회의원이었다. 그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부산도심철도시설 부지 외곽이전, 서면․범천지역 특화거리 조성, 동천환경개선사업 등의 공약은 대부분이 이행되거나 의정 기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역대 선거 후보들이 선거 기간 동안 형식적으로 내세우고 민심을 유도하기 위해 남발하고 지켜지지 못했던 공약들과는 달리 18대 국회의원 이종혁은 그가 내뱉은 공약을 다 지켰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지금 부산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서 내세운 8대 공약을 보면 2008년의 미래 성장 동력산업의 연장선에 있는 업그레이드 버전임을 알 수 있다. 그는 18대 국회의원에서 보여준 성과처럼 자신이 뱉은 약속을 지키고 소신 있게 실행에 옮기는 임무 수행 능력이 뛰어난 일하는 CEO형 정치인임을 알 수 있고, 개인의 욕심보다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바른 신념을 가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
    

18대 국회의원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이종혁의 역경과 고난이 시작되었다. 19대 총선에서 친홍세력이란 이유로 공천에 배제되었다. 한번 좌절했지만 그는 18대 대선에 박근혜 후보의 정무특보와 대선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 조직단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원하여 당선의 승전보를 올렸다. 그 이후 1년 7개월 동안 여의도연구원 상근 부원장직을 수행하여 당의 핵심전략 기구로 성실히 직분을 다하셨다. 그리고 기대하던 20대 총선에서 이번에는 진박감별로 또다시 공천학살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때 정무특보로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였던 결과가 두 번째 공천 배제로 나타나니 큰 상실감과 회의감을 느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대표였다.  
   
이종혁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설 정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당시의 경남 지역의 1조원이 넘는 채무를 부지 매각 없이 행정개혁과 재정개혁만으로 채무 전액을 상환하여 채무 제로로 만들고, 경남도의 최하위권이었던 청렴도를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실시한 고강도 청렴대책으로 청렴도 1위를 만드는 성과에 이바지하며 그의 능력을 발휘하였고, 이후 19대 대선에 홍준표 후보의 특보단장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비록 홍준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진 않았지만 단기간에 지지율을 향상시켜 24.04%의 득표율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이후 홍 당대표의 측근으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에 임명되어 그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종혁의 최고위원 임명까지 잡음도 있었지만 그는 홍 당대표를 따라 당의 혁신에 동참하여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최고위원 시절 그의 발언은 자유한국당과 타 정당을 뒤흔드는 소신 있는 목소리였다. 당 내부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민주주의는 책임정치이다.”, “당 대표가 집권 여당에 비난을 받는데 아무도 방어하는 사람이 없다. 먼저 당 대표의 입지부터 바로 세워라.” 등의 충신의 발언이 있다. 그는 그의 직분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임무 수행으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당 외부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주사파와의 체제 전쟁 선포 발언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민주주의 발언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최고의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최고위원의 직분에 충실하고, 그의 발언은 소신과 정당성에 근거하였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쉽사리 부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의 힘이 담겨있다.
    

이제 이종혁은 맡은 직분에 충실하고 소신 있게 실행에 옮기는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을 부산 위해 발휘하려고 한다. 6.13 지방선거를 통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종혁 후보는 정치적 신념과 정정당당한 성품을 겸비한 새로운 혁신 리더십을 내세워 강력한 개혁을 선포하였다. 부산을 혁신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고 부산시청을 전략기획실 삼아 부산시장이란 직분의 수행하려 한다. 부산시민들을 주주로 삼고 부산시민을 위한 개혁 방안을 실행에 옮길 것을 약속하였다. 그는 부산의 강력한 개혁을 위해 일하는 CEO형 시장이 되겠다고 선언하였고, 2008년부터 주장하였던 미래 성장 동력산업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8대 공약을 발표해 지킬 수 있는 약속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시민이 주신 부산시장은 시민을 위해 사용해야하는 부산시민과의 약속이고 더 열심히 일해라는 무한의 책임이라며 지금까지의 부산시장들과는 다른, 새로운 개혁의 일하는 부산시장이 되겠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바른 신념과 충실하고 소신 있는 임무 수행 능력을 부산시민으로서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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